이 작품은 권순형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 교수를 정년퇴임하던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유약의 흘러내림 효과를 부각시킨 작품이다. 항아리 형태의 전통적인 기형에 바탕 원형을 구획하고 그 외부에 코발트유를 시유하여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유약의 흐름을 순간적으로 정지시킨 듯한 것이 특징적이다. 가마 속의 불이 유약의 용융점에 도달했을 때, 불을 통제하여 얻어지게 되는 이 효과는 권순형의 도예세계를 구축해 온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이다. 불에 의한 우연성-사실은 작가에 의해 이미 예측된 결과 속에서 귀결된 것이지만-의 미학은 도예라는 장르 만이 가진 표현상의 특수성이기도 하다. 유약의 흘러내림은 결국 중력에 의해 연출된 자연현상이라는 점이나 달항아리 형태의 풍만한 구형의 표면에 그려진 원형들이 마치 우주의 순환적 질서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기운생동하는 자연의 신비한 힘을 우리에게 전해준다.